행슈님 인문학

멋진 삶을 살기 위한 단초, 윤리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이유

Energy-Train 2021. 1. 1. 18:50

 

보통 동식물에게 사건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롯이 하나의 선택지만 있기 때문에 자연의 프로그래밍을 결코 벗어날 없기 때문이죠.

 

 

1.야생의 새끼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의 좋은 먹잇감입니다.

2.햄스터의 어미는 이따금 자기의 새끼들을 먹어 치웁니다.

3.뻐꾸기의 새끼는 다른 새의 둥지에 자리를 잡는 것도 모자라 둥지에 있던 다른 알들도 밀쳐 냅니다.

 

모든 현상은 잔인합니다만 당사자들에게는 별도리가 없습니다.  이런종류의 사건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예정되어 있고 거의 항상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인 개미를 예를 들어볼까요?

 

 

개미들은 자신의 주거지에 적이 침입했을때  일개미들은 부서진 개미집을 수리하러 가고 병정개미들은 침입자를 향해 달려갑니다. 대체로 개미들은 침입자를 직접처리 없습니다. 해봤자 진행을 조금 멈추는 것이 다죠. 그런데 진행을 잠깐 멈추는 것에 수만 마리의 개미가 희생됩니다. 이때 누구도 개미들의 희생에 대해 숭고하다거나 경외의 표시를 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개미'들에게 그저 그래야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한편 인간의 경우는 조금 다른듯합니다. 영화 삼백을 아시나요? 스파르타 정예군 300명을 비롯한 약 천명의 아테네인이 페르시아군의 대군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전멸했던 전투를 모티브한 영화입니다. 실제 군사의 숫자는 저마다 달리 말하지만 분명한 건 아테네 쪽은 소군 페르시아 쪽은 대군이었다는 점입니다.

Majorities VS Minorities


하나의 전제를 달겠습니다. 생명체의 목적은 삶에 있습니다. 전쟁의 목적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되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죽음이 뻔히 예정된 곳에 몸을 내던지진 않습니다. 물론 당시 사회적 배경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징집을 거부하거나 도망치는 행위는 주위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들의 행동은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결국 당사자들의 것입니다. 조롱을 받으며 살아가도 ‘삶’은 유지해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어요. 고국의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의 선택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경외와 존경을 보내는 것이지요.

 


 

즉 인간은 아무리 선택이 제한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궁극적으로 예정되지 않을 것을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세상은 그렇기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내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해로울 있고 내게 해로운 것이 이로울 수도 있습니다. 과정에서 실수를 하기도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죠. 이것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더욱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해보는것  이를 삶의 지혜 또는 윤리라고 한답니다